뱀파이어 영화는 뱀파이어라는 매개체의 특성상 항상 자극적이고 유혈이 낭자한 영화가 많았습니다. 뭐 당연합니다. 뱀파이어는 인간의 피를 마시기 위해 인간을 해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인간과 적이 될 수 밖에 없고, 피가 튀는 싸움을 벌이고 인간을 사냥할 수 밖에 없죠. 따라서 항상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뱀파이어 소재는 늘 주류였습니다.
물론 그런 영화들이 대중들의 이목을 끌고, 또한 보는 재미가 있기도 합니다. 저도 동의를 하구요.
하지만 뱀파이어지만 동시에 어린 고아 소녀의 순수한 시점을 그린, 유혈이 낭자한 뱀파이어의 폭력과 인간 사냥이 아닌 그 때묻지 않은 순수한 뱀파이어 소녀의 시점을 그린 영화로 힐링을 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여기 그 영화를 소개합니다.
때는 1876년 스페인, 카를로스파 전쟁이 벌어졌을 때. (카를로스파 전쟁은 19세기 스페인에서 벌어진 일련의 내전과정을 말합니다. 1차 부터 3차까지 19세기에 벌어졌으나 20세기에 벌어진 스페인 내전도 제4차 카를로스파 전쟁이라고 보기도 한고 하는군요.)
스페인의 한 성당 내부에서 사망 직전까지 가는 한 고아 소녀를 카메라가 조명합니다.
이 고아 소녀는 수녀들과, 다른 고아 소녀들과 함께 기도를 하던 중 전쟁의 여파로 건물이 무너져 잔해에 깔려 사망 직전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한 정체불명의 헝겊을 몸에 둘러싼 나이 든 여인이 죽기 직전의 그 소녀를 찾아오고,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소녀를 돌봐줍니다. 소녀는 잔해에 깔려 뼈가 부러졌고 약한 신체는 사망 직전입니다.
소녀는 그 여인에게 죽기 싫다고 말하고, 그 여인은 다친 몸을 낫게 해줄 수 있고 자신이 본인이 원하면 그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하지만, 아주 간절히 원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죽음을 앞둔 소녀는 간절히 원한다고 대답하고, 결국 그 여인은 소녀의 몸을 낫게 해줍니다.
하지만 그들의 정체가 뱀파이어였단 걸 스페인 병사들에게 들켰던 것인지,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그들은 사냥당하고, 대부분이 몰살당하거나 실종되어버립니다.
탈출 과정에서 주인공 소녀는 절벽으로 떨어지고, 자신을 딸이라고 부르는 그 여인과 결별하게 됩니다.
이제 막 자신을 딸처럼 대해준 어머니같은 존재를 만났는데 , 안타깝게도 얼마 가지 않아 결별하게 되고 소녀는 그 '무언가'가 된 채로 혼자서 동굴에서 고립 생활을 합니다.
네. 그 '무언가'는 바로 뱀파이어입니다.
뱀파이어가 된 소녀는 10년간 자신의 존재를 숨기며 숲속에서 생존하지만 태양빛에 노출되면 타버릴려고 하는 자신의 몸을 보고 절망합니다. 외로이 고독히, 동굴속에서 그 뱀파이어가 된 작은 소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 영화 내용 설명 (스포일러!) |
기적적으로 햇빛에 자신의 뱀파이어 피부를 태우고 새로운 피부를 생성하는 과정을 오랜 기간 거치며 소녀는 우연치 않게 햇빛에도 불타지 않는 뱀파이어가 됩니다.
뱀파이어 소녀는 어떤 작은 마을에서 덫에 걸려 한 아내와 딸을 잃은 착한 중년 남자에게 거둬져 입양되어집니다. 공식적인 절차는 아니었지만 그 중년 남자는 딸같은 감정을 느껴 주인공 소녀를 돌봐주게 되고, '아마이아'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하지만 그 중년 남자와 아마이와의 행복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습니다. 아마이아가 뱀파이어라는 것이 직접 언급되지는 않지만, 오랜 시간 동안 피를 마시지 않은 아마이아는 마을 사람들에게 '악마'라는 소문이 나고, 자신의 존재에 환멸감을 느끼게 되는 아마이아는 마을의 신부에게 자신이 악마라고 말하며 치료해달라고 하지만, 그 과정 중에서 자신을 돌봐 준 중년 남자가 아마이아를 구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마이아는 이미 악마 같은 존재로 마을에 소문이 나버렸고,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중년 남자는 아마이아와 함께 외딴 시골로 가서 단둘이 살게 됩니다.
결국 자신을 돌봐주었던 중년 남자는 노환으로 사망하고, 다시 아마이아는 혼자가 되고 맙니다. 아마이아는 다른 사람을 잃는 상실을 계속 경험하며 자신이 영생을 가진 뱀파이어라는 사실에 절망한 아마이아는 극적으로 자신을 뱀파이어로 만든 그 여인과 만나고, 자신에게 죽지도 못하는 '저주'를 걸었고 이 삶을 끝내고 싶다고 절규합니다.
결국 자신을 뱀파이어로 만들었던 그 여인은 아마이아에 절규에 무언가를 느낀 것인지 아마이아 앞에서 햇빛 앞으로 나와 자살을 하고 마는 비극적인 상황이 연출되고야 맙니다.
결국 소중한 사람을 모두 잃은 소녀 아마이아. 물 속으로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합니다. 그 후 외로움과 자신이 잃은 인연들을 그리워하며 슬픔에 사무치지만, 더이상 두렵지 않다고 되뇌인 후, 자신이 마주한 이 상황을 극복하겠다는 독백을 마치며 아련하게 영화는 끝이 납니다.
* 최종 리뷰 |
이 영화는 유혈이 낭자하는 전형적인 뱀파이어 영화는 아니었지만, 다른 의미로 최고였던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사실 뱀파이어라는 소재는 덤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뱀파이어는 인간을 초월하는 강력하고 공포스러운 존재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물론 각종 질병에 면역이고, 밥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으며, 몸이 빨리 회복되는 초인적인 면은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보다 신체 능력이 월등히 강하다거나, 인간의 마음을 조종한다거나 하는 모습은 없이, 그저 늙지만 않을 뿐 인간에게 무력하게 당하는 인간과 비슷한 존재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주인공 아마이아가 뱀파이어라고 부각되는 장면 또한 없고, 작중에서 '뱀파이어'라는 단어조차 사용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영화 구성 속에서 제가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영화의 주제는 뱀파이어라는 소재가 아니며, 뱀파이어라는 소재로 아마이아라는 소녀의 슬픈 삶을 그려내며, 인간이 가진 상실감, 외로움, 사랑을 표현한 영화라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단순하고 복잡함 없는 스토리에서 느껴지는 고전 감성이 화려합니다. 주인공 소녀 역할을 맡은 배우의 열연은 몰입감이 훌륭했습니다.
함께 만약 여러분이 전형적인 뱀파이어 액션이나 뱀파이어 공포 영화를 찾고 있다면, 이것은 그런 영화는 아니지만, 여러분이 여러분의 눈에 눈물을 가져다 줄 아름다운 이야기를 찾고 있다면, 이것은 여러분에게 완벽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가슴 아프지만 희망적인 분위기로 끝납니다.
이 영화는 놓쳐서는 안 될 현대 고전입니다.